평론에 대한 평론

발표시간:2010년11월30일 15:30

1. 들어가는 말

    문학평론에는 문학작품, 작가, 문학사상, 문학운동, 문학류파에 대한 평론들이 망라된다.
    문학평론은 과학성, 론리성, 에술성의 특징을 가진다.
    문학평론은 형상과 정감으로 진행하는 문학창작과는 달리 리지와 추상으로써 진행하는 과학적인 분석과 판단으로 이루어진다.
    문학평론은 주로 론리를 따지며 법칙을 밝혀서 사람들을 설득시키게 된다. 하기에 문학평론은 개념, 추리, 판단으로 론증을 진행하기에 론리성을 그 특징으로 내세우게 된다.
    문학평론은 일반 평론보다 달리 형상사유를 요구하고 또 정서적으로 쓸것을 요구하기에 일정한 예술성을 가지게 된다. 하기에 자기의 주장과 태도를 감정에 무르녹여 예술적으로 가공하고 리론적으로 승화시켜 독자들에게 계시를 주어야 할뿐만아니라 심미적으로 예술적 향수를 느끼게 하여야 한다.
    때문에 문학평론은 문학의 제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연구하고 실사구시적인 판단평가를 내리면서 자기의 개성적인 새로운 론단을 내리는 글이라고 할수가 있다. 일찍 부쉬낀은 <<문학평론은 문학예술작품의 아름다움과 결점을 지적하는 과학이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평론은 엄숙한 과학연구 활동이며 책임적인 개인창조 활동인것이다.

2. 평론의 문제점들

    문학평론을 하려면 우선 문학개론, 미학개론, 그리고 아동문학개론의 기초지식부터 장악하여야 한다.
    그다음 문학쟝르학에 대한 지식도 갖추어야 한다. 동요와 동시가 어떻게 다른가? 우화와 동화가 어떻게 다른가? 소설과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가?이런것들은 최저 한도로 갖추어야 할 지식들로 제기된다.
    그런데 당면 우리 평론들에는 이런 지식의 결핍으로 하여 이런 저런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평론과 감상문 관계문제

    우리의 평론을 보면 감상문이 적지 않다. 이것은 평론에 대한 인식이 따라가지 못한데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평론은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자기의 득특한 구성특징을 갖고 있다. 서론에서는 평론을 쓰게 된 동기와 리유를 밝히고 론점을 제시하게 된다. 본론에서는 여러가지 추리방법으로써 론점을 론증하게 된다. 결론에서는 자기의 론단을 과학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이런 평론은 론점이 명확하고 론거가 충분하며 론증이 면밀하고 론단이 과학적일것을 요구하게 된다. 지금 문단에 발표된 평론들을 보면 분산된 론점, 이러저러한 감상 라렬, 우상화된 결론을 내리고 나중에 약간한 부족점을 제기하는 도식적인 현상이 엄중하다.
    특히 평론에서의 결론에서는 본론에서 자기의 론점을 론증한 기초상에서 마땅히 내려주어야 할 론단을 명확히 제시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평론을 보면 이런 론단을 내리지 않고 우점을 긍정하고 나중에 약간한 결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체하기땜에 감상문으로 전락되고 마는 페단이 아주 많다.
    정몽호를 평론한 <<남다른 애착, 독특한 발견, 끈질긴 추구>>란 평론을 보면 정몽호의 생평을 간단히 소개하고 그가 현대시를 추구한 정황을 개술한 다음 그에 대한 평가를 명확히 제기하지 못하여 평자의 관점이 모호하게 되였다.
    전 편에서 정몽호의 어떤 애착, 어떤 독특한 발견, 어떤 끈질긴 추구였는가를 방점 찍으며 분석하고 그에 상응한 결론을 내려주어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결론을 내리는 단계에 와서 먼저 결함을 지적하고 다음 정몽호는 전통시로부터 현대시창작에로의 이행에서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피력하고 나서 정몽호동시를 따라 배우자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하여 이 글은 정몽호에 대한 추모의 감정이 우세되여 이른바의 감상문 수준을 뛰여 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리영철의 동화<<용이와 그의 벗들>>을 평론한 <<더불어 사는 세상과 동심의 현실체험>>이라는 평론에서는 소설에서 쓰는 에필로그까지 설정하고 론문의 결론부분을 리영철의 동화창작의 력사,. 수상정황, 중견작가, 약간한 결함 지적으로 대치하여 론문을 망그러 뜨렸다, 이 부분에서는 마땅히 동화 <<용이와 그의 벗들>>에 대한 과학적 그리고 실사구시적인 결론을 내려주어야 할것이였다.  즉 동화창작에서 리영철이 성공한 경험, 우리 조선족 동화창작에서의 리영철의 위치와 역할 등을 강조하여야 할것이였다.

둘째. 론점문제.

    평론의 론점은 과학적이고 또 명확하여여 한다. 이런 론점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심각한 분석에 기초하에 추리되여야만 한다.
동요 <<조용히>>는 다음과 같다
    <<복도에서 걸을때면 /언제나 조용히/발뒤축 들고서/모두다 조용히/죄꼬만 입 꼭 다물고/모두다 조용히>>.
    이것은 지난 시기 좌적인 시대의 <<군사적제도>>로 복도질서를 유지하려는 일부 학교에서 나타난 현상을 노래한 동요이다. 여기서 천진란만한 아이들의 형상보다는 복도 제도에 통제된 아이들의 굴종적인 형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어떤 평론가는 <<이 얼마나 성스러운 <조용히 >이며 엄숙한 <조용인가?>기록하면서도 철같은 규률성의 륜곽이 도드라지고 있으며 시간성, 계획성, 례절성 씨앗이 파묻혀 있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여기서 우선 복도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통제된 생활을 하는 것이 옳은가가 문제로 나선다. 기설 이런 통제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개성을 묵살하는 통제이며 교원들이 일부 아이들을 동원하여 대부분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제정한 그릇된 수단인것 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마땅히 천진란만한 아이들로 자라나야 한다. 복도에서 이이들이 서로 웃으며 손잡고 자유스럽게 다니는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이런 통제하에 자라나는 아이들을 극찬하는 론점이 문제로 되지 않을수가 없다. 판단의 오유는 론점의 오유를 유발하게 된다. 그런 론점으로 쓴 평론은 오유를 범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것은 작자를 우상화하려는 의도에서 쓴 평론에 지나지 않는다. 우상화하자과 보니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고서도 모자라서 없는 것 있는것 죄다 동원하고 있다. 여기서 어떻게 <<시간성>>,<<계획성>>,<<례절성>>을 도출하여 낼수가 있단 말인가?
    평론<<더불어 사는 세상과 동심의 현실체험>>에서 평자는 <<그러나 리영철선생의 쓴 중편동화<용이와 그의 벗들>은 제재를 현실생활에서 찾고있다>>는것을 자기의 론문의 론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동화를 현실생활에서 찾은 제재를 가지고 쓴다는 것을 그 누가 모르는가? 이것은 새로운 론점으로 될수가 없다. 동화는 현실에서 찾은 제재를 의인화, 과장, 마법이라는 동화표현수법으로 동화를 쓴다는것부터 알고 론점을 바로잡아야 할것 이다.

셋째. 론거문제

    평론을 쓰자면 리론적인 론거와 사실적인 론거가 수요된다.
    리론적인 론거는 과학성을 수요로 한다. 리론은 시대발전에 따라 변화발전하게 된다. 하기에 리론의 시대성문제는 마땅히 고려하여야 할것이다. 뒤떨어진 리론을 자기의 론거로 삼을 경우 그것은 자기의 무지를 직접 고백하는 것으로 된다.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이미지>>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정도로 진척되고 있다. 그런데 1980년대 출판된 한국 <<국어대사전>>의 해석을 그대로 가져다가 <<이미지>>를 해석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그것은 평자가 <<이미지>>에 대한 리론학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적 론거는 그 진실성을 생명으로 한다. 아동소설 <<노랑새가 부럽네요>>를 평론한 글을 보면 론거를 실용주의적으로 다루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 글에서 소설의 내용은 직접 사실적 론거로 된다. 평자는 주인공이 엄마 잃은 새를 구해주는 이야기만을 론거로 리용하면서 새들도 자기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는데 사람들은 왜 그러지 못한가 하는 점만 방점 찍으면서 이 소설은 잘 된 작품이라고 론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주인공의 아빠와 옆집 엄마가 사랑하는 내용으로 후반 부분을 더 쓰고 있다, 소설의 작자는 이런 사실을 통하여 혼외사랑을 찬미하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평자는 이 소설의 이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고 평론을 하였다 . 다시 말하면 작품의 절반을 론거로 삼아 평론한것이다. 결과적으로 론거로 되는 작품에서 자기의 론점만 증명할수가 있는 부분만을 실용주의적으로 따온것으로 된다.

넷째, 론증문제

    평론가는 론점과 론거를 긴밀히 련계시켜 엄밀한 론리관계를 건립하면서 론점의 정확성을 증명하여야 한다.
    <<우리 집 남새밭에/오이넝쿨에/애기오이 오롱조롱/열리였네요/파란잎 앵산쓰고/땡볕 피하여/애기오이 새근새근/낮잠 자네요/해비에 밤이슬에/목욕하면서/애기오이 포동포동/살이 졌네요>>
    이것은 동시<<애기오이>>전문이다.
    여기서 동시인은<<애기오이>>가 완전히 <<포동포동 살이 졌네요>>라고 썼다 , 다시 말하면 작자는 <<포동포동>>살이 찐 오이, 즉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아기오이>>를 가시 돋친 오이가 아니라 다 큰 오이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동시인이 시적형상화에서의 오유로 된다.
    그런데 평자는 동시인의 이런 본래의 시적 형상을 떠나 <<살이 쪄가는>>오이로 , 다시 말하면 애기오이로부터 다 큰 오이로 변해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오이로 시적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고 자기의 론증을 하려고 시도하였다.
    평자는 아기오이가 다 큰 오이로 변해가는 과정에 오이로 설정하여 놓고서도 이번엔 <<물론 <애기오이>인 경우에는 그것이 살찐것으로 형상화 하기보다는 여위고 가시가 가득한것으로 형상화하야야 할것이다. >>라고 자기의 론점과 상반되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평자는 우의 결론을 자기절로 또 부정하면서 <<하지만 작자는 이것을 피하고 낮잠 자고 목욕하고 살이 쪄가는 그 느낌을 강조함으로써 모든것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형상화하였다>>라고 자아모순에 깊숙이 빠진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그래 아름다운 <<모든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애기오이>>일것이다. 그래 애기오이가 아름다운가?
    평자는 동시인의 형상적 오유를 덮어 감추고 자기가 변화시킨 시적대상을 엉뚱하게 극찬하는것으로써 동시인의 작품을 극찬하는데 이르려 하였다. 이것은 그 어떤 의도적인 목적으로 평가하는 비과학적인 우상화 태도의 발로라고 본다.

다섯째, 우상화된 관점문제

    최근에 연변문단에서 나타난 사이비이한 관점들을 보기로 하자.
    김학철과 정판룡을 <<두 정상>>이요 <<두 산맥>>이요 하던데로부터 시작하여 <<***은 100년에 나타나기 어려운 녀류 소설가이다>>. <<***은 하나님이 우리 조선족에게 점지하여 준 천재적인 시인이다>>,<<***은 살아있는 동화사전이다>>,<<***은 중국조선족 녀류작가의 기수이다.>>,<<***은 중국조선족의 최후의 애국자이다.>><<***은 최첨단에서 시를 쓰고있다>>,<<***은 동시엄마이다>>라는 말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런 관점들은 우선 더 분석연구할 여지가 없는 비과학적인 론단이라고 할수밖에 없다. 그다음 이것은 그 어떤 사사로운 목적으로 대상을 우상화하려는 의도에서 내려진 결론이라고 본다, 과학적인 평론은 이런 비과학적인 경향과 담을 쌓아야 한다.
    우리 문단에는 <<우리 조선족작가들이 많지 않은데 우리 서로 춰주지 않으면 누가 춰주겠는가?>>하는 민족자비심을 토대로 한 <<우상화선풍>>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우상화는 <<문화혁명>>기간보다 더욱 엄중한 현상으로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량심적인 작가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우리 평론가들은 이런 현상을 물리치고 과학적이며 실사구시적이며 량심적인 론단을 내려주어야 할것이다.

여섯째, 남의 성과를 인용하는 문제

    남의 성과를 인용할때 그 출처를 엄숙히 밝히여야 한다. 한국 리재철교수의 박사생이 박사론문을 쓸때 한국 동화작가이며 평론가인 박상재의 론문을 몇대목씩 짤라다가 주석도 없이 자기의 견해인것처럼 발표하여 박상재는 항의를 제기하였던것이다.
    그리고 우리 연변의 작가론에도 남의 연구한 재료를 몇단락씩 그대로 옮겨놓는가 하면 남의 론문의 론점과 론거들을 따다가 자기의 이른바 <<론문>>을 조립한것도 있다.
    이것은 최저한도로 엄숙치 못한 행동이며 본질적으로 뵤면 이것은 표절행위라고 하여야 할것이다. 하기에 다른 사람의 성과를 인용할때에는 주해를 달고 그 출처를 명확히 밝히여야 할것이다.

3. 결론

    상술한 평론의 페단들을 극복하고 평론의 질적인 제고를 가져와 우리 아동문학의 건전한 발전을 밀고 나아갈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게 하자면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를 돌려야 할것이다.
    (1)아동문학 기초리론지식부터 체계적으로 학습할 필요가 제기된다. 이것은 론점 설정으로부터 론거 선택, 그리고 론증 전반에 걸쳐 수요로 하는 리론적 요구로 된다.
    (2)변화발전한 당대아동문학리론을 학습하여 평론의 질적인 제고를 가져와야 한다. 아동문학리론은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날따라 변화발전하고 있다. 현대론문을 쓴다면서 뒤떨어진 지난날 리론으로 론문을 쓰면 아니 될줄로 안다.
    (3)평론의 임무는 작품의 성과를 실사구시적으로 긍정하고 작품의 결함을 과학적으로 제시하여 작품창작에서의 옳바른 방향을 제시하여주는 것으로 되여야 한다. 때문에 작품의 실제를 떠나 작가를 구중천에 올리 떠받드는 우상화경향이거나 작품을 보지 않고 작자를 보면서 덮어놓고 타매하는 현상은 모두 극복하여야 할바이다.
    하기에 필자는 평론에 대한 평론을 활성화하여 평론의 질적 제고를 가져옴으로써 우리 아동문학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할때는 이미 도래하였다고 본다.